갑작스런 고통이 찾아오면 우리는
간절한 기도를 한다. 간이 절절한 기도를
하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리가 생각한다. 이것은 목회자들이 설교에 자주 등장시키는 소재이기도 한다. 여러가지 들은 이야기로 그리고 반복되는 이야기로
간절한 기도에 의한 기적이 강화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성도들이 분발하고 노력하기를 요구한다.
이렇게 간절한 기도와 기적의 스토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예수님과 베드로가 보여준 기적과 이적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을까? 믿음이 강한
성도나 목회자의 이적과 기적이 그 뒤를
이어 쌓이면서 기독교는 이적과 기적을
늘 보여주는 종교가 되었나?
기적과 이적은 간절한 기도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기에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그리고 기적과 이적 뒤에는 내가 하나님과
직통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고 관종의
대상이 되는 즐거움도 나중에 있다.
그러나 그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뒷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또 그 뒷 이야기가
예수님의 기적과 무엇이 다른지 짐작이
가는가?
내가 아는 한 모든 기적
경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경험했을 때를 기준으로 점점
여려지는 믿음을 보이고 있다. 더 심하면
예수님을 교회를 떠나는 체험자를 듣기도
했다.
예수님의 기적은 이것과 다르다. 예수님은
기적 자체이시며 아주 절제된 기적만을
보이셨는데 그 중심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기적을 체험한 자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동이 여려지는 것은 일맥
상통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심을
변화시키는 예수님 기적의 관점이다.
예수가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 그 자체가 본질이다.
감정이야 사그라들고 옅어지고 끝내는
사라진다. 인간이 체험한 기적이 다 그렇다.
예수님의 기적도 매 한가지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 바로 구세주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받으러 간
예수는 즉각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마귀에게
예수님의 방식대로 처리했다.
그것은 간절한 기도에 의한 감정의 변화를
얻은 기적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의한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너무 아프고 급한 처치가 필요할 때
본질로 돌아가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가
되심으로 위로를 받는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조금 더 이해하는 삶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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