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독립만세

내목#25 정치범예수

by 우면동소바 2023. 2. 26.

예수가 재판을 받는 그 때의 상황은
로마의 속국 정치방법과 연관되어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실리 없지만
우리는 그 상황을 조금 더 들어야 보고
그 의미와 2000년을 넘게 기독교가
발전하고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지역은 외세의 침입이 빈번한
곳으로 상당히 비옥한 땅과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고작 솔로몬시대가 최고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짧은 시간만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카비혁명으로 로마에게  본때를 보여준
이스라엘 민족은 막강한 힘을 가진 로마
입자에서는 조금 더 지혜롭게 다스려야할
지역이었다.  방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현지의 지도자를 내세워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전략을 세운 로마는
이스라엘에게는 종교지도자들을 이용하여
다스렸다.  

빌라도는 로마의 현지 관료자로 이스라엘
지역의 반란은 자기의 생명줄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끔 로만에 가서 현지 총독의
불법, 만행을 고발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정치범이 아닌 종교범으로
예수를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
섰던 강도는 그럼 누구인가?   십자가형은
정치법에게 주는 형틀이었고 강도들은
당연히 정치범이었다.  그러기에 상인이나
남의 돈을 갈취하는 강도가 아닌 실제로는
로마에게 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강도다.
(다만 당시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강도라
표현한 것이다.)

빌라도는 군중의 소란을 피하기 위해
예수를 십자가로 몰고 가고, 제사장들은
독립을 위해 고생한 이스라엘 강도를
풀어주어 군중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

결국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정치꾼들의 싸움에서 희생양으로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고, 그들에게는
모두가 이득을 얻는 중재안이 예수였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나중에 그리스도인
이라 칭함을 받지만 예수십자가 당시에는
도망하고 숨어버렸다.  
그들은 예수를 마카비혁명처럼 생각했지만
이슬처럼 가버린 모습에 실망과 상처를 안고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진짜 정치범
예수였다면 그들의 목숨과 가족도 불안에
떨었겠지만 중재안이었던 예수는 그렇게
떠났고 그들도 그렇게 살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2000년을 넘게 살아있는
이유다.  정치범이 아닌 중재안으로 예수,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한 예수가 있었기에 그런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평소에 대하는가?
정치범으로 종교범으로 아니면
내가 편할 때와 어려울 때 다르게 만나는
중재안으로 보는가?

'신앙독립만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목#27 간음한여인  (0) 2023.02.27
내목#26 가나안교인  (0) 2023.02.26
내목#24 십자가혼용  (1) 2023.02.24
내목#23 리더는 역할  (0) 2023.02.09
내목#22아버지눈물  (0)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