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회중 기도를 장로가 된 이후로 자주
하는 편이다. 일년에 몇 차례씩 하기도 한다.
이 기도를 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긴장
하고 준비하고 작성하고 지우고 한 것이
여러번이다.

A4용지 한장 분량의 기도이지만 꽤나
공이 들어간다.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혀서 약간의
수정만 하면 되는 수준이 되었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도자가 이런
정도의 분량으로 회중기도를 하고 있고
어떤 분들은 2배 가까운 분량으로도
기도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회중기도문은 사전 작성하여
기도하게끔 되어 있고
처음 하는 분이나 여러번 하신 분이나
기도하는데 이 방법이 도움이 된다.
또한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전에 작성해서
기도하는 것은 예배자로서의 자세이기도
하다.

몇개월전 나는 루터교회 예배를 참여한
적이 있다. 매주 성찬과 함께 1시간 30분
정도 드려지는데, 가장 충격받는 것 중의
하나가 2~3문장의 기도였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3~5분 정도의 회중
기도와는 다르게 20초만에 끝나는 회중
기도였다. 또 성경봉독은 구약, 신약 등
여러곳 성경을 읽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신구약 성경 본문이 서로 관련있어 보였다.
개신교 대부분의 예배에서 회중기도자의
역할과 루터교의 회중기도자의 그것이
어떻게 다르게 되었을까?
구약 제사에서는 기도가 있었을까?
모세오경을 낭독하거나 암송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유대인에게 말씀
묵상이 가장 중요한 설교이고 기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본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으로
루터교회는 말씀을 기도보다 더 강조
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현대 교회의 예배가 형식에
그 내용을 빼앗긴 상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설교와 찬양과 기도가 하나님 말씀보다
훨씬 앞서 있고 다양한 형식이 내용을
가리는 예배말이다.

바울은 본인이 고린도후저 11장 6절에서
말이 어눌하다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는 최고다라는
고백을 한다.
요즘 표현으로 믿음 좋은데 설교는
빵점자리라는 것이다. 글을 잘쓰는데
설교는 영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의 10시간이 넘는 드로와 설교중에는
한 청중이 3층에서 떨어져 죽기도 했다.
길기도 하지만 설교에 몰입시키는 수준이
낮았던 바울의 탓이 컸다.
그런데도 바울을 기독교 최고위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그의 마음에 있는 진심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내면과 우리의 예배를
잘 살펴볼 시간이 되었다.
유럽과 미국의 죽어가는 교회를 보며
우리 차례가 되었다는 위기감에 앞서
우리의 예배가 진정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져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시기다.
목사님들은 반드시 이 부분에 대해
먼저 성찰하고 성도들에게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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