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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의 고통

by 우면동소바 2024. 1. 25.

뼈가 부서지는 해산의 고통!

성경을 읽고 깨달으면서 절대
조심할 것은 인간 세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즉자적
이해를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위한
여정과 결과를 피조물인 인간에게
알게 하고자 씌여진 것이기에
단어 하나 조차도 인간의 용어로
해석/이해하면 진의를 알기 어렵
습니다.

(그래서 좋은 설교자임을 구별하는
기준도 구원 사역인지 피조물의
성장과 발전을 설교 내용으로 담고
있는가 입니다.)

이 기준으로 구원사역의 중요한
화두를 담고 있는 '해산'과 '여자'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의미 있을 듯
합니다.

딤전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2:15의 '여자'라는 의미가 성별로
여자로 이해 한다면 매우 협소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자'라는 의미는 교회를 의미
하며 신랑인 예수를 받이하는 신부로
이해하는 것이 바른 성경이해입니다.

그럼 '해산'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창세기 3장에서 여자에게
준 하나님의 저주로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해산'도 인간의 종족 번식의 의미로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식하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제대로 인식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산'은 주님이 피조물에게 준
저주이지만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기에 예수도
이 과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다시 딤전 2:15절을 읽으면
해산하는 고통을 통해 구원을
얻는데 이를 위해 믿음, 사랑,
거룩함에 거해야 합니다.

교회(=나, 성도)가 하나님이 주신
저주인 해산하는 고통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어떻게
이해가 됩니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딤전 2:15를
예수십자가로 교회를 해산의 고통으로
낳았다는 바울 말씀으로 갑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통은 해산의
고통이었고 이로 인해 이 땅에
교회(우리)가 태어났습니다.

해산은 하나님의 저주였기에
바울의 말은 예수도 저주 아래
있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
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저주받는
자가 된다고 합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래서 해산은 가장 큰 고통이지만
교회가 탄생하는 하나님이 원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과정입니다.

해산의 의미는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자기부인의 과정이
해산처럼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처럼 우리의
자기부인도 그 고통이 크다는
것입니다.
(교회공통체 안에서 인간관계, 헌금
교회 행정, 행사가 힘든 것이 아니라
자기부인이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은 그만큼 피조물의 제대로
된 신앙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먼저 지고 가신 예수로
우리는 값없이 고통없이 거져 얻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인정, 자기부인의
삶 이외에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해산'은 자기 부인의 고통을 의미하고
이것을 경험하는 성도가 구원을 있다는
확신입니다.

예수가 해산의 저주 아래 있으면서
이 땅에 교회를 낳았고 우리도 그 십자가
아래 있으면서 자기부인을 통해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해산#자기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