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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시작 밤에 온 니고데모

by 우면동소바 2024. 4. 15.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승리의 여신
나이키와 민중이라는 데모의 합성어
입니다.  

그는 율법학자이고 제법 잘 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를 3번 등장시키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요한복음의 비유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는 특징이 있기에 니고데모의
등장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 봅니다.

일단 니고데모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다시 태어남에 많은 생각을
한 듯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입지에 대한 자각도 있었습니다.
또한 배우고 느낀 바를 실천하는
역량도 있었습니다.

그는 아시다시피 밤에 찾아옵니다
밤은 어둠의 상징이고 잘 알아 볼 수 없는
시간대입니다.   율법학자로 잘 알려진
그가 배움도 없는 일천한 목수의 아들을
찾는 것은 밤이 적당합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궁금한 점도 은밀하게 질문
해야 합니다.

그러나 밤은 유대인에게 하루의 시작입니다.
이 밤을 시작으로 니고데모의 변화가 일어
날 수 있다라는 암시를 주기도 합니다.

암튼 그는 예수에게 어떻게 해야 다시 태어
날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주신 예수님의 말에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냐고 반문하지만 하늘로부터,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하며 바람처럼
수수께끼 같다는 부연 설명까지 하고 계십
니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예수님이
니고데모에 대해 무척이나 호의적이고
무슨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니고데모도 율법학자라 구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성령의 하는 일에 대해 잘 압니다.  
하지만 3장 11절처럼 본 것을 증언하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심판의 불뱀이 구원의 놋뱀이
되었고 예수 본인도 그렇게 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19장 39절에 몰약과
침향을 가져와 예수의 장례에 참여합니다.
놋뱀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회심을 한 것
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니고데모를 통해 땅과
하늘의 차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변화받아야 하는 우리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밤에 서있는 자들입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우리는 밤에 있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찾아오셔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자녀
삼아 주십니다.

밤은 하루의 시작이고 우리와 니고데모가
서있던 자리였습니다.  놋뱀을 보면 살 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십자가
예수를 쳐다보며 이 밤이 지나면 변화되어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