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상태가 되라고 합니다.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라 합니다.
평강, 화평, 평화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보통은 '에이레네'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럼 평강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통은 모든 것이 원만하여 걱정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 증거가 이사야 9장 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한 아기는 예수를 이르는 말이고 예수는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평강의 왕이니 성경에
왜 그렇게도 많이 평강/화평/평화라는
단어가 성경에 쓰였는지를 알 듯 합니다.
골 3장 15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부르심을 받았은데 이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합니다.
이는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평강한 상태가
되기 위해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평강의 왕인 예수와 하나가 되면 우리는
평강의 상태가 됩니다.
예수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내가 너희에게 주고자 했던 것 곧
평강을 주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 후에 제자들은 평강을 예수로부터
받았습니다. 엡 3장 14절 이하에서는
예수가 평강을 위해 막힌 담을 허셨다고
합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온 이유가 평강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강을 예수에게 받는 이들은
모든 것이 원만하여 걱정없은 상태로
산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평강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육신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랬고 믿음의 선조들이
다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평강을 받았는데 몸은 힘들고 고난이
함께 하였습니다.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죽더라도 그것을 예수는 평강
이라고 합니다.
평강을 받은 자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평강의 삶과 다르게 살았습니다.
(이것을 과장되이 적용해 보면 우리가
평강을 받았는데 걱정없이 즐겁게 산다면
진정한 평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평강은 몸, 물질, 명예와는
상관없고 예수를 내가 소유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 오셔사 자기 몸을
버려 하나님과 화해케하는 평강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 평강을 소유한 자는 은혜안에 거하는
자이며 하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이고 환경과 물질적으로
걱정이 없는 상태를 평안의 상태라 할 수
없고 영생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바라보는 것을 평강의 상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의하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제대로 이해가 됩니다.
평강의 왕인 예수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것을 끊고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화해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 참 기독교인은 육신, 재물,
명예가 주는 고통을 고통이라 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에 참여한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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