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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종교개혁의 길

by 우면동소바 2024. 4. 2.


[결 론]
인쇄술을 이길 수 없어 카톨릭의 부패가
무너졌듯이 유튜브를 이기지 못해
기독교의 기존 권력과 조직은 더 이상
눈길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
카톨릭은 삶이기에 프로테스탄트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기독교의 대안이
너무나 많기에 기독교를 외면합니다.
기독교는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잊혀지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2의 종교개혁입니다.



지독한 한국기독교의 부패한 교단과
목회자를 보면서 '다는 그렇지 않다'고
위로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위치에 가려고 노력없음에 어이없어
하고 있습니다.

15세기까지 1천년을 이어온 라틴어
성경으로 성도를 얼르고 뺨치고
신앙의 병신을 만든 카톨릭이 새로운
성경과 플랫폼으로 종교 개혁의
이름으로 처단을 받은 것이 오늘날
같은 이유로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처단을 받고 있습니다.

일단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 각 종파들은 이미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기 위해 조직
하고 지원하고 변화시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
하게 다지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이미 정해 놓은 규정에서
절대 전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관계에서 관계로 씨줄과 날줄을 만들어
더러운 것을 함께 감싸는 모습은 가히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완벽하게
구별하여 차별 대우를 하며 권력
위계를 만들어 공고하게 세력을
다지고 있습니다.

개교회 목회자의 설교는 프린트된
문서를 짜집기 하여 전달하고 있으며
설교에서 뭔가 감동을 주는 요소를
세상에서 찾아 MSG를 치고 있습니다.

이미 종교개혁의 상황에 이르렀지만
그동안 축적한 부와 권력과 관계로
이를 처절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동안 부흥의 이름으로 축적된
물질적인 부를 이용하여 종굑개혁이
덤비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고 있습니다.

60~80대에게는 '아멘'으로 강요된
신앙이 효과가 있지만, 10~40대에겐
창조론도 수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권력구조와 비도덕 행위에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매주 설교에서
성도의 믿음 부족으로 부흥이 안되고
교회가 망하고 있다 합니다.

결국
이제 평시도에 의한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입니다.

15~16세기 종교개혁의 시작은 새로운
성경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리스와
히브리어에 능통한 깨어있는 성직자의
노력으로 새로운 성경번역을 만들어
하나님과 예수를 직통으로 만나고
사랑을 날것으로 느끼는 상태가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인쇄술은 그림과 찬송과 성경책을 빠르게
멀리 많이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직통 하나님과 예수를 만나고자 했던
목마른 영혼들에게 1세기 초대교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유튜브를 비롯한 메타버스의 세계는
깨어있는 성직자들의 컨텐츠를 인쇄보다
더 빠르게 멀리 많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직자들이 주도했던
15~16세기와 다르게 평신도가 각자의
자리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찾는 영성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교회라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장소와 시간을 떠나서
듣는 설교와 예배는 영성을 살려
줍니다.

16세기 종교개혁과 다르게 오늘날
깨어있는 평신도는 기존의 권력과 조직을
재편하거나 깨뜨릴 마음이 없습니다.
마틴루터로부터 '루터란 처치'가 만들어진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종파가 만들어
졌습니다.  새로운 조직의 탄생입니다.

그러나 현대 평신도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의미없다 생각합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의 차이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의를
얼마나 잘 알려주고 그것을 믿게 하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교제와 봉사등은 동아리처럼 필요에 따라
대학 수업 찾아가듯 하면 됩니다.   물리적
교회가 필요없습니다.   교제와 봉사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매니저가 필요할 뿐입니다.

차를 몰고 걸어와서 드리는 예배로 인해
게으르지 않고 맞댐하여 교제하고 뭔가를
한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목회자들의 관점입니다.   출애굽 성도들은
광야에서 예배들였고 바벨로 포로들은
강가에서 예배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관계)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믿느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 평신도들은 더 많은
유튜브 예배 영상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가장 잘 전달해 주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제를 하는 모임을 찾고
가장 봉사를 아름답게 하는 모임을 찾아
봉사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이 목회자들을 긴장하게
하고 가장 잘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여
배달사고 없은 예배와 설교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인쇄술을 이길 수 없어 카톨릭의 부패가
무너졌듯이 유튜브를 이기지 못해
기독교의 기존 권력과 조직은 더 이상
눈길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
카톨릭은 삶이기에 프로테스탄트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기독교의 대안이
너무나 많기에 기독교를 외면합니다.
기독교는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잊혀지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2의 종교개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