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을 삼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한없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도 오지게
받은 민족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받은 복이 있지만 가나안
정착후 타락하는 이 민족을 하나님은 엄하게
꾸짖습니다. 바벨론을 몽둥이로 삼아 꾸짖고
이웃 민족을 통해 지속적을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단 한가지 약속은 7부족을 진멸하여
신앙적으로 물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에 9장에는 기브온 족속이
조약을 맺어서 살아남고, 일부 부족도
타협을 통해 살아남았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결국 가나안에 남아있는
이방 신앙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위협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원죄를 가지고 있는
피조물로서 다른 신앙적 위협에도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은 스스로 왕정을 요구하여
신정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왕정은 가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인간의 기준으로 결정/판단하여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는 의사결정을 하게 됩니다.
물론 왕정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한
형제로 생각하게 만들고, 일년에 3번 성전에
모여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신 한분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신명기 29장에 걱정하듯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과 멀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할 때 그들의
능력이나 지력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잘못으로
송두리째 잃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타락한 길과 아주 유사합니다.
첫째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우상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진멸하지 못하는 것과
둘째는 왕정처럼 가족과 씨족과 인간의 기준으로
믿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판단하고 의사결정
하는 것은 대부분 교회의 목회자와 교단입니다.
가나안 7부족의 의미를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고
오늘 우리에게 7부족은 무엇인지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을 교회 목회자나 중직자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왕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로지 성경에 있으며 이 성경으로 함께 의사결정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모든 성도와 목회자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결정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피조물들의 기쁨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왕정시대 이후 패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잠시나마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것도
성전에서 찾은 성경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도 성경이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성경에 다시 힘을 쏟아야 할 시기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함께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요시야왕의 개혁이후 20년 뒤에
무너졌지만 요시야 왕이 개혁은 죽은 것이 아니라
포로기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에 대한
피조물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포로 귀환 후 한 성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구별된 민족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한국 기독교는 이제 바벨론 포로기로 들어가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포로기는 믿음의 관점을 확고하게
바꾼 계기가 된 것처럼 한국 기독교도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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