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죄를 인식하게 하는 초등학문
일뿐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킴으로 자기를
의인화시켜 더 깊은 죄를 짓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율법과
범죄에서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율법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입해 봄으로써 현대인의 신앙생활과
현대 기독교가 가진 문제점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모든 성도가 가진 문제점은 아니지만
누구나 이런 마음과 자세로 신앙생활
하기에 현대의 율법/우상입니다.)
나는 '나'중심으로 생각하고 영역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신년이 되었으므로 성경
1독을 하고 주일, 수요예배를 빠지지
않고 참여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새로운 해가 되면서
'나'중심의 신앙 규칙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하나님이 좋아할
것이라고 믿고 타인들도 이런 도전에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다 몸이 아프거나 상황이 변화
되어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할 수도
예배를 참여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환경을 핑계삼아 신앙규칙을
수정합니다. 2년에 1독으로 바꾸거나
이 환경을 이기기 위해 독한 마음으로
3독을 하겠다고 합니다.
환경 변화에 따른 신앙생활의 차이가
생기면 스스로 만족하게 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으로 만들어진 차이를
새 신앙규칙으로 극복하고 재정리
했다고 본인이 만족하고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 규칙을 만들고
또 환경에 따라 재정리하는 내면에는
내가 '삶', '하나님', '예배'의 주인이라는
마음이 근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인이 나'라는 생각과 태도는
모든 인간에게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가 가진 가장 중요한 신앙
태도인 '하나님은 창조주고 나는 피조물'
이라는 것에 대척점에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정의'하고 찬양을
'정의'하고 예배를 '정의'하고 있음은
'우상'을 스스로 만들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나를
중심에 놓고 매번 규칙을 만들고
새로 고치고 새로 고치는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반면 피조물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합니다. 죽음, 불안, 공포입니다.
이것은 내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이므로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여지를
남겨 놓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두 영역을 나누어 정리해 보면,
피조물이 편안하고 문제없고 모든
관계가 잘 풀려 불안과 공포가 없어
보이면 스스로 '하나님'과 '예배'를
정의하고 그 형식에 본인이 빠져
살아갑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지거나 직장을
잃거나 자녀가 상상하지 못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어 공포와 불안이 생기면
이것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거라며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우상화와
율법주의가 교단과 목회자와 먼저
신앙을 한 사람들이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하나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노력하면
하나님이 그 과정을 인정해 주신다는
설교가 피조물들의 우상화 작업에
휘발유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자연도 완전하게 이해 못하는 우리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제대로 이해합니까?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은혜안에 두손 들고
들어가는 것만 하면 됩니다.
자기만 만든 자기 형식과 그 형식을
재창조하면 합리화시키는 현대
기독교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 갈 뿐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위로 받을 것은
우리 모두는 본래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이지만 순종의 예수의
은혜로 바늘귀 같은 소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죄#자기합리화#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