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브라함의 의? 우리의 의? 하나님의 '의'!

by 우면동소바 2024. 2. 11.

창세기 15장  2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고'

'의'란 표현이 성경에는 자주 보입니다.
'의'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피조물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내 백성을 품고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조물의 '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5장 2절은 이 점을 명확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을 믿으니'
'누가?'
'아브라함이!'
그런데 그 아브라함의 믿음은
누가 주었을까요?  
'하나님이!'

그러니 아브라함이 한 것은
오직 믿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것조차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의 의로 여기실 때 효력을
발생하게 됩니다.

홀로 있는 아브라함의 '의'는 허상입니다.
아브라함의 '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다는 수동적인
고백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성경의 관점에서 롬 4장4절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교회 일 열심히 하는 자에게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의'를 다시
갚아야 할 것으로 여기고 다시 말해
보수로 보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감사'로 '은혜'로 받으면 됩니다.

뭔가 자기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공로와 헌신과 이웃 섬김을 해야 하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힌 바된 상태에
있는 것이 '보수'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롬4장 5절에는 아브라함을 경건하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고
이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의롭다
여기신다 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 밖에서는 의롭지
못하 자입니다.   하나님이 비로소 인정할
때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브라함의 과거를 보면
아내를 팔아서라도 자기를 지키고 자기
씨를 지키려던 아브라함,  모리아 산으로
가며 뒤늦게 없은 자식을 통해 자기 씨를
지키려던 아브라함의 고민과 행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못 본 척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칼에 이삭이 죽든 아내를 팔든  개의치
않으십니다.   그의 행위가 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에는 순서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먼저 있었고 우리 피조물의
의는 하나님의 의를 믿고 이를 인정받으면
비로소 생기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묵시(계시)라 합니다.  이는
변개치 않습니다.   우리 피조물의 '의'를
역사라 합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알고 이해하고 사는 것이
피조물의 '의'이며 그렇게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앞서 우리의 의가 있지
않습니다.   묵시가 있고 우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묵시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가 하나님의 의에 앞서
있어서도 안됩니다.  

그러니
이삭을 바친 것을 아브라함의 '의'로 여겨
하나님의 '의'를 가리는 설교와
이를 '아멘'으로 받아드리는 우매함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아브라함의 의#하나님의 의#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