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말을
많이 하시는지...
목사들은 순종과 복종을 너무 좋아합니다.
순종과 복종을 마치 군사용어로 이해하고
그렇게 성도가 자기 의견을 죽이고 참고
목사 앞으로 나아오기를 기대합니다.
삼상 15장22절에는 이 순종에 대한
명쾌한 정의가 나와 있습니다.
바라기는 목사들이 순종과 복종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이해하고 인간관계에
오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말렉의 전투에서 사울은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좋은 양과 소를 제사용으로
끌고 왔습니다.
이에 대해 사무엘이 사울에게 한 말이
삼상 15장 22절의 말씀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입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이
순종이고 이를 하나님이 좋아하신다
했습니다.
여기서 '나으니'라는 말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아더라는
말과 같은 '토브'입니다.
즉, 순종은 선이고 청종하지 않는
상태에서 드리는 제사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과 복종은 하나님의 말씀과
묵시의 계획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대적으로 인간사이에서 목사에게
순종과 복종을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러한 순종과 복종은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피자 복종하거나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성경은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 사이에서 순종,
복종하라는 말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학습하고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 설정을 피조물과 피조물 사이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목사 등 교역자들에게 복종,
순종하라는 말은 하나님과 피조물
관계를 피조물과 피조물의 관계로
가져오는 사울왕의 상태입니다.
피조물의 노력하여 다른 피조물을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좋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노력하고 애쓰고, 자기 노력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인정받지도 않습니다.
전지전능하고 모든 곳을 창조하고
소유하신 그 분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제대로 알고 감사하는 것으로 영광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순종과 복종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그것입니다. 사울은 '자기 의'로
'자기 판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했지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본인이 버림 받음을 알게 됩니다.
상하와 좌우를 제대로 이해하는
피조물이 될 때 바른 신앙생활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복종#순종#숫양의 기름#제사#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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