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나무와 연관된 것들이
있습니다. 선악과, 생명나무,
십자가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있은 후에
동산에는 보기에 좋은 나무를 나타
나게 하시고 거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로 옷을 해 입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1절에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무화과 옷은 스스로 만든 옷이고
가죽옷은 하나님이 지어 주신 것
입니다.)
그리고 22절에는 생명나무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걱정하여 그룹들과
화영검을 돌게 하여 지킬뿐 아니라
아담화 하와를 동산에서 쫒아냅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자들이
생명나무열매를 먹으면 살텐데 이를
막고 쫓아버리는 하나님의 계획은
무슨 의미일까요?
왜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완벽하게
지키고 접근조차 못하게 하시고
피조물들은 동산에서 쫓아 버렸을까요?
그럼 이렇게 가정해 보시지요. 만약
피조물들이 생명나무에 접근하여
먹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타락한
인간이 생명나무 실과를 먹음으로
죄인의 상태로 영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차마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접근금지 지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는
생명 나무에도 동일 적용되는 것입니다.
결국 생명나무는 죄인인 피조물이
스스로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먹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가 함께 언약한 것을
성취하기 위한 묵시입니다.
그래서
생명나무는 선악과를 따먹은 자에게는
죽음의 나무가 됩니다. 오직 예수의
피로 씻음 받은 세마포를 입은 성도가
먹을 때에만 생명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그룹과
화영검으로 지키고 인간들은 동산
동쪽으로 나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생명나무 실과를
먹이기 위해 십자가 나무에 메달려
죽고 그에게서 피와 물이 나온 것입니다.
이 죽음으로 생명으로 가는 길이 열렸고
진리로 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선악과와 생명나무 그리고 십자가
예수를 이해하면 왜 인간이 먼저
타락하고 동산에서 나가게 되었고
생명나무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모든 길에는 받드시
피의 값이 필요하며 피값이 주어지면
그룹들이 지키던 것을 열어줍니다.
애굽에서 나와 요단 동편에서 가나안
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통해 피값이 주어졌고, 여호수와(예수)
가 앞장 서게 된 것입니다.
속이는 자 에서도 그의 본향으로 가기
위해 환도뼈가 부러지는 피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반드시 피값이
요구되며 그 피값은 바로 예수입니다.
빛으로 어두움을 몰아내듯 예수는
성소의 휘장을 찢고 모든 교회들이
죄사함을 받게 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갑절의 능력을
주었고 예수는 모든 교회가 탄생하게
하는 피값을 치르셨습니다.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의 피값으로 사는
피조물로서 이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선악과#생명나무#피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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