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을 거두면 일곱을 가져가는 계약을
맺은 어부들은 항상 가난에 허덕이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부뿐 아니라 모든 비엘리트 층이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지주는 극히 소수였지만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
문화, 종교로 민중을 탄압하며 그
지위를 지속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공생애 초기 예수의 회개하라는 외침은
세례요한의 회개 외침과는 다른 외침
이었습니다. 겁을 주는 세례요한의
외침에 비해 예수는 따스한 봄날의
햇빛처럼 온화한 외침이었습니다.
예수는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호수에
있는 꽤나 번성한 도시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거기는 산업이 번창했고
경계도시라는 특성으로 세관도 있는
복잡한 도시였습니다.
여기에서 어부였던 사람들을 제자로
불렀습니다. 그들은 모든 생업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일어납니다.
저는 한 가장이 가족을 놓아두고
예수을 따라 일어서는지가 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가장이라면 아내와
자녀들을 버려두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가능합니까?)
당시 예수는 세례요한보다도
지명도가 적었었을 뿐 아니라
외모도 그닥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분이 '나를 따르라' 하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따라가는 입장에
서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를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로마의 피지배 민족을 다스리는
방법은 종교와 문화를 풀어주고
경제를 쥐고 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간
엘리트는 철저하게 인사이더로
인정하고 서로 보호하는 방식입니다.
어부나 소작농은 70%의 수확물을
바쳐야 했고 그 사이에서 세리들은
또다른 권력 행사를 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허가받은 한도
내에서 유대인들을 탄압했고
시끄럽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이
협업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어부로서의
제자들은 새로운 희망을 건져낼
지도자들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정치와 문화와
경제의 전복을 꿈꾸던 사람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십자가로 가시는 예수를
잡아채며 교훈하기까지 했을 겁니다.
그는 로마로부터 벗어난 유대인의
왕의 오른팔이라는 생각을 늘 했을
겁니다.
(마카베오 혁명을 아는 베드로는
분명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을 겁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마음을 모를리
없는 예수지만 영적으로 꾸짖어
사탄이라 엄하게 대합니다.
그러하 이후에도 베드로의 마음은
새로운 정부의 지도자와 예수의
제자라는 두 길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닭이 울기전 3번 부인하기도
했으며 그런 자신을 보며 미칠 지경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예수가 떠난 뒤 그 마음을 다시 잡고
어부로 살아가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물을 던져도 물이 아니라 허공에
던지며 3년간의 제자로서의 삶에 대한
혼란한 마음이 미칠 지경이었을 겁니다.
이 베드로가 나의 양을 먹이라는
3번의 명령을 들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
예수가 보내주신 성령을 받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그는 다짐
했을 겁니다.
(그 다짐이 하나님께 예정하신 길임음
그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1세기 팔레스틴 지역에서
예수를 따라 나서는 것도 목숨을 거는 거고
예수와 함께 정치적 지도자가 되려는 것도
목숨을 거는 거고
성령으로 참 제자가 되는 것도 목숨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세번의 목숨을 걸고
참 제자가 되어 온전한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성경의 글자로만 이해하면
안되는 절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세번의 목숨 걸걸기#참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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