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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순교

by 우면동소바 2024. 2. 12.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죽임을
당한 기독교인에 대한 영상을
수년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딱 한번 본 영상인데 그 처참함이
지금도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떤 믿음이었기에 목이 잘리는
순교를 마다하지 않고 받아
들였을까요?

이 영상을 보고 잠간이나마 나의
믿음의 수준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극단적으로는 저런 칼이 내 앞에
있다면 나는 배교하지 않고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순교자는 참으로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는 생각에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순교자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른 길이구나 하는 생각과
나의 구원의 길이 참으로 멀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1세기 핍박의 기도교인들은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렸고 이후에도
선교와 전도를 위한 길에는 순교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으로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주는 최고의 믿음의 수준을
순교라는 생각은
앞서 언급했듯이 나의 초라한
믿음에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선교하다 순교를
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을
따르며 순교를 했습니다.

믿음이 전해지는 그 시간과 장소에
언제나 함께 되어지는 순교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나의 믿음이 순교자에 비해
너무나도 적음을 인정하고 이를
쉴드치려는 지점에서 시작된
궁금증일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는
어떤 믿음의 태도로 순교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는 점에서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 궁금증을 2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순교는 죽음을 의미할까요?
순교는 정말 최고의 믿음의 수준일까요?

이 2가지 궁금증을 찾아
조금 더 깊에 생각해 보고 그리스도인으로
순교의 공통점을 찾아 그 최소공약수를
정리해 본다면
"하나님이 나를 죽이는 것"라는 것에
수렴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는 것은 실제적인
육체적 죽음을 포함하여 영적으로
자기 아집과 자기 성을 쌓고 있는
내 영을 죽이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명확한 설명일 것입니다.

즉,
순교는 우리가 매일 매일 행하는
자기 자아 죽이기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다시 살리는 것이죠
마치 예수가 산고의 고통을 십자가에
지시면서 교회를 탄생시켰듯이
우리는 우리를 매일 죽이면서 새로운
탄생을 하는 것입니다.
 

순교를 생활까지 끌고 내려온 점이
있어 순교자에 대한 예의는 아닌 듯
싶지만 하나님이 요구하는 순교는
우리의 구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매일 자아의 죽이기는 진정한
순교입니다.

아담의 창조는 먼지, 흙에서 했고
그 의미는 없음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으로 영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참수형으로 보여지는 순교는
피조물이 볼 때는 안타깝고 내심
나의 부끄러운 믿음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무에서 창조된 피조물이 무로 가는
과정입니다.    

진정 고귀하게 생각할 것은 영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순종의 믿음 과정이 있는가 입니다.

육체의 고통은 늘 우리가 경험하는
아픔이기에 죽음과 참수의 처참함을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영이 다시 태어나는 매일의
산고의 고통은 소경이기게 보지도
못하고, 귀가 멀었기에 듣지도 못하고,
통증이 없기에 느끼지도 못하고 살고
있는 현재 내 모습입니다
.
   
순교는 매일 일어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 순교를 통해 참 자식임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조금만 더 성경에 씌여져 있는 말씀에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시고 인정하고
감사하고 행복해 합시다.

이것이 참 순교입니다.

#참수#순교#배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