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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과 십일조

by 우면동소바 2024. 2. 23.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서 이스라엘은
장자의 죽음을 면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리신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장자 대신 레위지파를
요구하십니다.    즉,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모든 장자대신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49개 성에 두어 하나님을
섬기게 함으로써 살게 합니다.
죽어야 할 레위인이 49개 성에 들어가
하나님을 위한 제사의 직분 감당으로
살아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각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아 레위인의 삶을 돕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께 차압당한 장남으로
죽어야할 대속물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예수를 상징하는
예표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은 장자로
예수를 내어줌으로서 레위인이 전
이스라엘 민족의 장자 대속물임을
선포하듯 예수를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십일조는 레위인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예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최초의 십일조는 하나님이
예수를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레위인을 위한 이스라엘의
고백이면서 예수를 위한 우리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는 본인이 대속죄물이 되어
용서받지 못할 우리들을 위한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는 레위인처럼 죽어져야 할
장자이지만 49개 성에 흩어져 사는
약속받은 회개자입니다.

애굽에서 이끌어 가나안으로 인도
하시고, 죽어야 할 레위인을 49개
성에 거주시키며 하나님을 경외토록
하고 6개의 도피성을 만들어
마지막까지 죄사함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하며 사는
것이 피조물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