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설교는 참 힘든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는 데 있어
재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이 설교는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시대와 중세와 그리고 현대에
있어 교회를 운영(?)하는 환경이
같지 않아 십일조 등 성도의 재정에
대해 똑 뿌러지게 기술하는 것은
매우 편협해 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로 세워졌고 성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와
건물과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매우 부족한 상태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소수의 교회가 예배장소를
마련한 상태이고 대다수의 교회는
장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가 크든 적든 발생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재정의 부적절한 사용, 행정과
의사결정의 문제, 목회자나 성도들의
인간관계의 문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 의를 어떻게
전달하고 깨닫는 것에 대한 문제는
매우 적습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의 관계의 문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준과
인간관계의 불편함 정도의 수준으로
나뉘게 됩니다. 특별히 목회자의
부적절한 성문제가 교회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재정의 문제는 재정 사용의 결정권을
가진 목회자나 재정담당 성도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헌금의 사적
사용 등이 문제이거나 목회자의 재정
사용처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런 재정 문제에 대해 말라기에서는
매우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의 말씀을 인용한
십일조 헌금 설교는 십일조가
성도들의 복을 가져다 준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말라기가 기록된 상황과
말라기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십일조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이스라엘은
스룹바벨 성전을 수축하고 예배를
올리며 삽니다. 바벨론은 정치적으로
속국을 통제하지만 속국의 문화는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는
대제사장이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속에 썩어진 대제사장은 백성이
드린 십일조 헌금을 비롯한 각종
제물을 임의대로 판매하기도 하고
사용했습니다.
또한 제사장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바벨론에서 파견한 총독등 고위층과
혼인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레위인에게 줄
십일조 창고를 다른 용도로 쓰는 일도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레인인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갑니다.)
대제사장의 이러한 부패에 대해
말라기(주의 사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는 표현이
바로 대제사장이 관리하는 성전의
십일조 창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발 흠있고, 탈이 있고, 문제가 되는
제물을 바치지도 말고, 바쳐진 제물과
헌물이 온전하게 잘 사용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채찍같은
말씀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에게 십일조와 주일성수와
하나님의 의를 알아가는 성도의 삶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온전하게
드려진 삶에 부와 명예와 권력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귀한게 여기는 것보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피조물임을
깨달는 것이 행복합니다.
끝으로 직업으로 세상의 부와 명예를
쌓아 올리는 부패한 목회자들이 말라기
선지자의 말씀을 잘 듣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것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라기#십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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