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어떻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은
예화가 있습니다.
이에 예수가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이에 청년은 이미 다 지키
었다고 말합니다.
이에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후 그 다음에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이는 계명을 다 지키고
네 마음이 있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영적으로 나를 따르면
너는 영생할 수 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입장에서 이 청년이 정말 계명을
다 지키고 살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계명은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하는 몽학
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를 다
지키었다는 것은 본인의 과장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는 계명을
다 지키었다는 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부자 청년은 있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는
말에는 소유가 많아 근심하게 되고
그냥 돌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청년은 결국 계명을 지키고 살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나누고 실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그는 부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영생을 살 수
없게 됩니다.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부자청년의 모습은 현대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우리는 말로는
계명을 지키고 예배를 참여하지만 실제
우리는 하나님과 의의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하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영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희생과 봉사로 보이지만
전도와 선교로 보이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정 받기 위한
마음이 앞선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다면
또는 나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 나의 명성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우리는 부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것을 흘려 보내고
예수를 쫓을 때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자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라한 자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자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나는 진정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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