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장 18절로 25절 말씀은 참
난해한 성경말씀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비가 자녀들을
노엽게하지 말고 종들이 상전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글로 읽으면 이해 안되는 부분이
없지만 성경에 당연한 윤리 이야기를
할 이유가 뭔지 이해가 안됩니다.
무슨일을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23절의 말씀도
당연한 것입니다.
25절에 불의의 보응을 받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하시니 잘 생겨야 구원받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로 성경은 절대로 인간 생활의
기본을 알려주는 윤리책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니 이런 인간생활의 윤리적인
행동 요령을 기록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고 이를 찾아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골로새 교회는 많은 시련이 이었습니다.
골로새는 4장 13절에 있는 것처럼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와 함께
무역이 성행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일찌기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철학 그리고 상업도시로서 유대인이
먼저 와 터를 닦았던 곳입니다.
차겁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회초리를
맞은 라오디게아는 온천으로 유명함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히에라볼리는 뜨거운 온천이, 골로새는
찬물이 유명했고 라오디게아는 두
도시로부터 수로로 물을 받아 사용
했습니다.
문제는 수로로 오면서 뜨거운물도
미지근해지고 찬물도 미지근해진
것입니다.
이제 골로새 교회의 문제를 봅시다.
골로새지역의 복잡한 문화와 철학은
골로세교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이원론에 바탕을 둔
영지주의로 육체에 과도한 금욕을
가하는 행동과 율법을 지킴으로
한 단계 높은 신앙을 보이려는
율법주의와 천사를 부리는 신비
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2장에 그러한 내용이 혼합 율법주의,
천사숭배 신비주의, 영지 금욕주의
순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두란노서원에서 배우고
고향으로 가는 에바브로에게 이
편지를 주어 오로지 예수만이
구원의 진수이고 핵심임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60세의 완숙한 믿음의 선구자로
로마 감옥에서 혼심을 다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론에 3장 18절 이하의 가정생활
규칙은 조금은 생뚱맞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잘 고민하고 그 숨을 의미를 묵상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에게 영지주의,
신비주의, 혼합 율법주의에 물들지 말고
피조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라는
의미로 이 부분을 기술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비, 영지, 율법주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피조물로 감사하며 현실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것이 가장 피조물다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장 25절의 불의라는 것은
영지, 신비, 율법주의입니다.
다른 말로 외모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처한 혼란한 믿음
상태를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이단이
넘치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고
자기의의 城을 쌓는 것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바울의 간절한 바람처럼
이미 구원해 주심에 감사하고
우리의 삶에 충실하여 불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서#라오디아게#영지주의#이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