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신랑보다 더 사랑하는 행위를
죄라 합니다.
성경에서 신랑은 우리 예수를 말하고 죄에
해당하는 것은 롬1:29~32절에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며 늘
저지르는 행위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삶의 내용이
거의 다 죄가 됩니다.
이유야 다 아시겠죠!
우선은 우리는 죄인의 자식입니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주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삶 즉, 자기 의를 쌓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은 다시 말해 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은 또다시 말해 피조물로서
무조건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고 아는
삶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삶을 주셨을 까요?
저는 이 점이 가장 궁금합니다.
어차피 말도 듣지 않고 죄만 짓는 삶을
인간을 왜 만들어서 역사 속에 두셨을까요?
하나님의 묵시는 우리가 없어도 이뤄지며
이것은 결코 변화되지 않는 이미 확정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을 줍니다.
나의 멍애는 가벼우니 함께 지자고
제안하시는 것으로 답을 주십니다.
신랑보다 더 사랑하는 그 행동으로
우리는 이혼 사유가 되고 지옥으로
가야할 처지이지만 끊임없이 우리에게
쉬운 멍애를 함께 매자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삶을 생각해보면
세상의 것을 차단하고 주님만을
생각하고 인정하는 것은 산고의 고통보다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게 합니다.
어찌보면 정말 단순한 삶인데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면 되는데
온갖 세상 것들을 쌓아 놓고 걱정하는
제 모습은 결코 회개하지 못하는
바보같습니다.
주님은 결혼으로 한몸이 되어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는 매일 밤 다른 연인을
찾아 헤매는 간음자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는 문 밖에서 오늘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홍등이 넘쳐나는
이 거리를 헤매도 다니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결혼, 이혼, 간음 등의 용어는
인간세상의 것을 빗대어 우리를 향한
예수의 사랑과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신랑#한몸#구원#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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