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95개조 논제에 대해 수요 성경공부
영상을 보면서 연옥과 면죄부에 대해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 시공이기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할까요?
정말 몸과 마음과 영혼이 기뻐하는 곳이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가고 싶은 시간과 공간이겠죠!
면죄부는 대사제도를 의미하며 대사라는 의미는
큰 사면을 의미하고, 영어로는 indulgence라
하여 죄를 덜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에서 배교하여 떠난 자들이
다시 돌아올 때 그들의 형벌(punishment)를
덜어주거나 면제해 주는 관행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중세에 이르러 연옥에서의 정화과정을
줄여주는 것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또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을 치르기 위해 비용이
필요했고 면죄부를 팔아 충당했습니다.
돈의 이자를 먹고 사는 고리대금업자나 상인은
중세 가톨릭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 받았는데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면죄부가 교황청으로부터 발행되니 고가에도
그것을 구입하게 됩니다.
면죄부의 수요와 공급이 생기고 당연 천국행인
성인, 교황, 순교자이외 모든 사람들은 이 면죄부를
구매하여 연옥에서 정화과정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가 자극되었습니다.
이 면죄부가 효력을 발생하는데는 죄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죄를 짓게 되면 두가지의
요소가 발생합니다.
죄 = 죄감정(guilty) + 형벌 (punishment)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감정은 용서를 받게 되나
형벌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이 형벌을
면죄(벌)부를 구입함으로써 감형내지는 무죄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상인이나 고리대금업자들은 지옥행이
결정된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였으므로 이
면죄부가 상당히 유혹적이었습니다.
면죄부는 교황의 승인을 받아 대주교가
판매를 하였고 한시적인 면죄부와
완전한 면죄부 (전대사)로 구분합니다.
천국직행자와 지옥직행자 이외의 사람들은
연옥에서 살다가 죄값을 치르고 천국으로
가는데 그 기간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면죄부는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데 면죄부를
구입하면 연옥의 기한이 줄거나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면죄부는 본인의 것 뿐 아니라
가족의 이름을 적으면 죽은 자의 연옥기간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었습니다.
루터가 살던 작센 주는 가톨릭의 알브레이트
주교와 정치적으로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많은 성물을
구입하여 관람료를 받았던 제후였고, 알브레이트
주교는 면죄부를 대량으로 구매하여 판매하고자
한 대주교였습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자신의 성물 관람료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여
면죄부 판매를 작세주에서는 금하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알브레이트 대주교의 면죄부 판매권을
알지 못한 채, 95개 논조를 대주교에 보내어 이를
토론하여 이 썩은 장치를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루터가 있던 작센주에서 판매금지된 면죄부를
이웃주에서 사기위해 강을 건너다 죽는 경우도
종종 발생되었다고 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횃불은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수도사의 의협심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가톨릭에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변질된 면죄부 제도를 개선하고자 했던
의도였습니다. 대사제도를 루터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면죄부(대사)의 시작은 배교자가 다시 돌아
올 때 회개를 통해 형벌을 감해주는 제도로
시작했고 십자군 전쟁의 비용을 충당하는
중요한 장치였고 교회 공동체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업(도로, 다리)을 위한 준 조세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사는 이렇게 돈을 가지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사는 마태복음 6장에
나와 있듯이 자선, 기도, 금식을 함으로써
이루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가톨릭에서는 교회의 권위로
주어지는 특별 은총을 간주되며 자선, 기도,
금식, 성사 참여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마틴루터가 대사제도와 그 의미를 인정하지만
개선을 위해 95개조 논제를 지역의 대주교와
논의하고자 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면죄부를 사러 이웃 주(州)로 가던 평민들이
차가운 겨울 앨베강을 건너다 빠져 죽는
성도들을 보며 루터는 측은지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루터가 품었던 순수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가 잡초처럼
죽지 않는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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